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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또 10기] 삶의 지도 (부제 : 막차와 노력)

양국남자 2024. 9. 22. 22:46

삶의 지도

추석동안 해외에 놀러온 축구광 친구 대접해 주다 보니 글작성이 뒤로 밀렸습니다. 지금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이 한국시간으로 23시 9분인데, <막차 타는 삶>이 내 인생의 '키워드' 라고 하면 정말 어울립니다. 아마 그 키워드를 바탕으로 삶의 지도를 쓰지 않을까 싶네요.

 

 

 

꿈이 없는 우등생

한국에서 여행 온 친구는 제 친구들을 보면서 '우등생' '영재' 같은 단어를 썼습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때 공부를 못하냐 한다면 당연히(?) 잘하는 그룹에 속하겠지만, 잘하는 사람만 놓고 보면 또 그렇지 않아서 자주 전투력 측정기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강대국의 최소라 하듯 우등생의 최소 이런 식으로요. 어렸을 적에는 문자 그대로 꿈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습니다. 관심이 가는 일은 많아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경험해 봤지만 무엇이든 금방 질리고 뒷심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지 역시 저를 초한지에 나오는 초패왕 항우에 비유하며 

"너 항우가 왜 유방에게 졌는 줄 아냐? 항우는 대전략이 없어. 팽월이 때리면 팽월 때리러 가고, 한신이 때리면 한신이 때리러 가고..."

 

딱 저런 느낌이었습니다. EPL이 때리면 EPL 때리러 가고, 롤이 때리면 롤이 때리러 가고... 전공 선택도 꿈 없어서 그냥 '돈 되는 과' 인 전산과를 갔는데, 노 베이스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하려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하며 꿈에 대한 갈망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습니다. 무기력하게 살고 싶지 않았기에 꿈을 찾고자 이런저런 전공들 기웃거려보면서 전공보다 다른 계열 과목들이 성적이 더 높은 웃픈 상황도 갔습니다. 어쨋거나 졸업의 시간은 왔고, 한국에서 이름 알면 다 아는 공대 나온 친구들은 저보다 먼저 가정과 커리어를 꾸며가며 저와 멀어져 갔습니다.

 

저 역시 개발자로 취업해서 연봉 자체는 높았지만, 회사의 관료적인 서열과 사내 정치 등에 지쳐가면서 녹슬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격투기와 <용과 같이>

다들 제가 관심사가 넓어서 교양이 넓다고 하지만, 웃기게도 방황하던 제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종교도, 철학책도, 소설도 아닌 격투기 (복싱, MMA) 와 <용과 같이 0> 라는 게임 이었습니다.

 

<용과 같이> 가 서구권에서 히트가 된 계기가 되었다는 <용과 같이 0>. Good game can change your life 라는데 정말 와닿는,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게임이었습니다. 근데 저기 아웃풋들이 다 야쿠자 깡패들인데 괜찮은 건가?

 

먼저 격투기 이야기 부터 하자면, 대학생활동안 녹슬어 가면서 노력하는 법조차 잊은 저에게 다시 한번 노력의 중요성과 |노력을 하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주먹을 효율적으로 치는 방법은 물론, 그에 앞서 발을 움직이고 움직일 때 맞지 않도록 가드를 올리고 움직이는 법 하나하나를 숙달해 가면서,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분야에 도전하는 성취감도 얻었습니다. 3분 3라운드 싸울 수 있도록 코어운동이나 줄넘기등도 제 인생에서는 평생 해보지 못할 정도로 매진했으며, 체급 관리를 하다보니 식단조절도 하게 되었습니다. 2년이 되도록 승 하나 못 올리다가, 180이 넘는 거구를 마지막 3라운드에 스트레이트로 쓰러뜨린 뒤, "이런 게 노력이구나!" 하면서 울면서 집에 갔지만, 아직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인생에 대한 태도를 정하는 데에는 의외의 동기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스포츠나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저는 한 친구의 소개로 <용과 같이> 라는 게임을 소개받았습니다. 인의예지신과 도덕은 커녕 법조차 없는 '막장 인생'을 사는 야쿠자들 (일본어에서는 어울리게도 야쿠자를 '극도' 라고 합니다) 이 본인의 무력과 의리에만 의지해 만들어가는 드라마를 보면서, 그리고 그들이 그 와중에서도 본인의 가치와 행복을 찾는 모습을 보면서 고등학생때 허세용으로 읽던 니체,카뮈나 아우렐리우스의 서적등이 생각났습니다. 행복은 본인이 직접 쟁취하는 것이고, 쟁취하기 위해선 노력을 아끼지 말되, 인생을 재미있게 만들 줄 알아야 한다고. 소비문화의 첨단에 사는 저희에게 80년대 일본 버블경제는 훌륭한 알레고리를 제공했으며, 주인공인 키류 카즈마와 마지마 고로는 사르트르, 니체, 카뮈 등의 사상을 각자의 의협심, 광기, 폭력, 그리고 배짱으로 써 내려갔습니다. 예수, 공자, 부처를 못 따라간 청년은 일본 게임 속 야쿠자 형님들에게 이끌려 이들의 영웅담을 듣다가 니체와 아우렐리우스 그리고 카뮈가 있는 집으로 인도받았습니다. 해석의 여지가 많으니 철학적 담론은 좀 짧게 하겠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쿠제 다이사쿠'와 '니시타니 호마레' 를 나무위키에 써보세요. 상남자란 저 형님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꾸준히 자기개발을 하다 보니 외모관리도 하면서 연애도 하고, 나중에는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기 위해 영국에 서 석사를 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석사를 결정하고 영국에 취업하다.

대학생때 보여준 모습과 업보 덕분에 부모님은 처음에 영국유학에 회의적이었습니다. 세계 120위권 카디프 대학교를 합격할 때까지는 회의적이었고, 세계 60위권 (오사카, 토론토, 텍사스 주립대 정도와 비슷한 수준이라 보면 됩니다) 글래스고 대학교를 붙었을 때에는 의견이 갈렸습니다. 그래도 저는 주변인들에게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을 최소 1년은 끊는다는 다짐을 하고 어느정도 각오를 다진 뒤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석사 생활을 하면서 인도, 중국, 일본, 이집트,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좋은 추억, 나쁜 경험 다 만들었고, 교수의 소개로 에듀테크 기업에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취업에는 조금 골때리는 백스토리가 있는데, 저는 평소에 게임을 좋아해서 제가 엄청 좋아하던 <토탈 워> 시리즈를 제작하던 Creative Assembly 의 오퍼도 받았지만, 더 높은 연봉과 '너 이왕이면 세상에 도움 되는 일 하지 그래?' 라는 교수의 권유로 저는 교수가 소개해준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의 업무 역시 머신러닝 모델링, 클라우드 전환 등 백엔드/데이터 사이언스/AI 개발 등을 어우르기 때문에, 단순히 '데이터 분석' 정도였던 Creative Assembly 의 직무보다 더 미래에 도움 될 거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작업한 프로젝트가 우크라이나 난민기구나 영국문화원 등에게 주목을 받고, "어찌 보면 글래스고 대학의 모토인 'World Changer' 가 이런 사람이구나!" 하면서 많이 느낌도 받고, 접어두었던 박사의 꿈이나 미국행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싶은 이유 - 창조자의 길을 향한 노력

추석동안 놀러온 친구를 공항에서 보내주면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6년 산 대전에서는 학교 방향, 특히 신전산동 방향으로는 오줌 하나 안 싼다 했는데 이제야 3년 사는 글래스고는 두 블럭 걸을 때 마다 재밌는 이야기와 추억이 샘솟는다. 아마 노력의 차이가 아닐까?" 

 

어찌 보면 맞는게 지금 영국 취업문은 좁아지고, 인도애들도 비자 스폰서를 못 받는 동창들은 하나둘씩 짐과 눈물을 싸고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회사가 스폰서를 해주고, 우리 과의 '인도 카르텔' 에 명예 회원 정도 자격으로 있는데, 사실 그조차도 개인적인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 했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를 직접 즐기면서 하다보니 더욱 와닿는 변화인데, 소비보다는 어느정도 참여와 생산이 재밌다는 자기 발견도 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 보다는 생산자가 되어보고 싶었습니다. 만화,게임을 좋아하면서도 방구석에서 과자먹으며 조용히 덕질하기 보다는 항상 동인지, 코스프레, 공략 등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더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물며 IT 개발이나 AI 트렌드 등 세상의 최첨단에 선 이야기들을 글로 공유한다? 더 멋진 창작자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